수도생활
우리는 누구인가?
수도자는 복음적 권고인 정결, 가난, 순명의 3대 공적 서원을 통해,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고, 서원한 바를 실천함으로써 교회 성성(聖性)의 표지가 되고, 종말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을 현세의 사람들에게 미리 보여주며 증거한다.
수도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하여 죽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하느님 안에 살려는 사람들이며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님을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증명한다. 수도자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중간 신분이 아니라 특수한 부르심을 받고 교회의 생활과 성덕에 이바지하며 서원을 통하여 지극히 사랑하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고 축성되는 생활을
한다.
수도복을 왜 입는가?
수도복은 수도자들이 종교적인 수도 상태에 있음을 드러내는 표시로 입는다. 교회법에 ‘수도자들은 자기의 축성의 표지와 가난의 증거로서 고유법의 규범에 따라 정해진 수도복을 입어야 한다’ (669조 1항)라고 규정되어 있듯이, 수도복은 일차적으로 수도자라는 신분을 드러내고, 이차적으로는 어느 수도회에 속해 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다.
수도 생활
수도생활은 정결, 가난, 순명의 세 가지 복음적 권고(consilia evangelica) 를 준수하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 및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성령의 감도를 받아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시작되는 봉헌 생활이다. 수도 생활은 제도적인 교회의 결정이나 구체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총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모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수도 생활의 본질은 그리스도를 복음적으로 철저히 따르는 것이고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서 살았던 그 생활양식을 본받는 것이다. 수도 생활은 먼저 그리스도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성소와 이런 은총과 무상의 부르심에 감사의 마음으로 동의하는 인간의 응답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하느님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는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표현된다. 즉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동시에 그분을 따르는 다른 이들과도 함께 사는 삶의 친교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다른 이와의 형제적인 사랑의 친교는 성사적으로 또 가장 믿을 만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의미하게 되는데 그래서 공동체 생활은 표징 중의 표징이고, 하느님 나라의 가장 투명한 실재이며, 수도생활과 복음화라는 말이 줄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최고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수도 생활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름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살면서(정결과 순명의 가난한 그리스도와 일치: 축성) 그분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 옆에 있거나 그분과 함께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위험과 희망을 나누고 자신의 생명을 나누는 것, 즉 그분의 방식에 점차 동일화되어 가고 그분과 같은 내적인 태도를 취하며 성령이 온전히 자신을 차지하도록 맡겨 드림으로써 존재와 활동의 모든 면에서 복음화를 이루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생활의 역사1

고대 사막의 수도승들로부터 현대의 새로운 형태의 수도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수도생활은 시대의 도전과 요구에 응답해오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형성시기부터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초기에 동정녀들은 기도와 봉사의 삶에 투신하기 위해 모여서 함께 살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고독한 기도의 삶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하느님과의 통교(通交)를 위해 사막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회수도원들, 집단수도회들, 수도생활을 위한 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것들은 현대의 수도원들의 근간을 이루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수도생활은 교회와 세상에 내려진 선물이다. 수도자들의 기도는 지상의 교회를 하느님께 들어올린다. 우리가 속한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를 닮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수도자들의 봉사와 의로움의 추구이다.
또한 복음적 권고인 정결, 가난, 순명의 삶은 아무런 외침 없이도 예수를 증거 할수 있게 한다.
모든 세기를 통해서 남녀 수도자들의 공동체는 성령의 감도하심으로 성장하고 기울며 번창하고 쇠퇴하면서 그들의 목적을 지향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밀물과 썰물은 2000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고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젊은 남녀
들을 축성생활로 부르고 계신다.
여기에서 수많은 수도자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간단히 살펴본다.
수도생활의 역사2
사도바오로의 서간 에 따르면 초기교회 공동체 안에 기도생활과 자선에 헌신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동정녀들의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박해
교회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자체가 순교를 각오한 영웅적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다른 신분의 필요성을 느끼지않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박해가 잠정적으로 중단 되었을때 금육자들이나 동정녀들 중에서는 하느님께 온전히 몰두하며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하기 위해 광야나 사막에 머무르면서 하느님만을 위한 삶을 살기도 했다.
그 이후 갈렐리우스 황제가 ‘관용의 칙령’과 313년 콘스탄틴의‘밀라노 칙령’을 선포로 그리스도교가 공식적으로 용인되었다.
사막의 성 안토니오
어느날 기도하던 중에 마태오 복음 19장 21절의 말씀을 듣고 가진 것을 모두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엄격한 극기의 삶을 시작한다.이러한 그의 삶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성아타나시오의 저서 "안토니오의 생애" 를 통해 서방 세계의 은수 생활의 이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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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승과 수녀승들의 공동체
가 이집트 사막에 형성되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빠코미오는 사막의 성안토니오와 동시대 인물로서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의 형제적 생활을 재현하고자 교회 역사상 첫 정주 생활의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폐쇄나 격리를 뜻하는 수도승원(monasterium)은 수도자들이 나누어 살면서 가진것을 공유하고 하루에 두번 공동으로 기도하고 식사를 하는곳을 의미했다. 그리고 성빠코미오는 순명을 가장 중요시 하였으며 수도 규칙을 집필하여 질서 잡힌 정주 생활의 구조와 애덕의 생활을 강조하였다.
체사레아의 주교인 성 바실리오는 소아시아에 많은 공동체들을 세웠고 주로 그의 수도승들은 교육과 사목적 돌봄에 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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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자이며 성경 번역가였던성 에로니모는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북아프리카의 주교로 있으면서 수도승들들 위한 규칙서를 집필하였다.

이 시기에는 동방에 수도공동체들이 급증하였다. 470년 경에 성녀브리짓다는 수도승과 수녀승을 위한 연합 수도공동체를 아일랜드의 킬데어에 세웠다.
공동체 생활의 형태가 은수 생활보다 더 많아지고 이러한 삶의 형태는 프랑스, 독일, 이태리로 번져 나갔다. 성베네딕도(480-547)가 수도회를 창설하고 수도승들을 위한 규칙서를 썼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다른 규칙서들과 비교해 볼 때 중용의 정신이 두드러지며 이로 인해 베네딕도 규칙서는 유럽의 수도원 제도의 표준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세계의 베네딕도 수도회의 규칙서로 사용하고 있다. 성베네딕도의 쌍둥이인 성녀 스콜라스타카는

몬테카시노의 베네딕도 수도원 근처에 있던 수녀회의 원장을 지냈으며 후에 모든 수녀승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되었다.
유럽의 수도회들은 고대 문학작품들을 보존하였는데 특별히 성경을 보존하고 필사하였다. 큰 수도회들은 학교, 병원, 순례자를 위한 숙소, 농장들을 운영하면서 점차로 문화와 경제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은 전쟁과 불안정으로 점점 황폐해져갔다.
프랑스의 클뤼니의 베네딕도 수도원은 중세교회 쇄신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주교들과 교황 등 많은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카말돌리 은수자회,카르투시안 은수자회, 관상수도회가 이태리의 성 로무알도와 프랑스 알 프스의 성 부루노에 의해 창설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클레르보 성베르나르도의 회 원수가 많이 늘어났으며 이 시대에는 수도자들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성 노르베르트가

설립한 프레몽트레 수도회는 수도 생활과 사목 생활을 조화시키면서 과거의 수도생활이 회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속으로부터 분리 시킨데 반해서 이들은 세속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사회 안으로 파견되었다. 이 때부터 탁발 수도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성노르베르트의 제삼회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첫 번째로 수도회와 연합된 평신도들의 모임이나 제삼회가 되었으며 이 형태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수도생활의 역사3
도시와 마을들이 개발됨과 동시에탁발 수도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관상 수도회들이 강조했던 것들과는 반대로 이 새로운 수도회들은 복음선포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150에 창설된 가르멜회, 1209년의 프란치스코회, 1214년의 도미니코회 그리고 1256년에 창설된 아우구스티노회가 대표적인 탁발 수도회이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 성토마스아퀴나스가 1241년에 도미니코회에 입회하고 후대에 교회법을 비롯한 신학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가르멜회원들이
가르멜의규칙을
만들게 되었다.
사실상 처음에 이 규칙은 매일의 기도와 관상 생활의 가이드로 만들어졌지만 가르멜회가 점점 커져갈수록 이 규칙은 관상과 함께 사도적 활동을 조화시켰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는 프란치스 코회의 창설자이다. 그의 영성은 소수성(minority)과 가난(poverty)의 강조에 있었다. 수도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이 세상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순회 설교자로 살아가면서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와 그 제자들의 모습을 재현해야 한다고 하였다.이들의 겸손하고 열렬한 생활은 기성 교회에 실망하고있던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으며 교회쇄신과 선교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독일 비텐베르그에서마르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제시 (Martin Luther proposes 95 theses) 하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고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격변이 일어났다

스페인의 아빌라의 대 데레사성녀와 십자가의 성요한은 가르멜의신비가, 작가 그리고 개혁자들이고 그들의 저서는 가톨릭교회의 영성적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수회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에 의해 생겨났다. 예수회원들은 교육과 선교 부분에서 세상과 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수도회들의 쇄신과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되었다.
사도직 수녀회들이 이 창설되었는데 이 새로운 공동체들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특별히 교육과 의학적 돌봄을 통해 그들의 사도직을 수행했다. 성 빈첸시오 드 뽈과 성녀 루이즈 드 마리약과 함께활동 수도회를 만들었다.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그 당시 유럽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많은 수도회들이 생겨났다.

교황 비오 12세가 축성 생활과 구별되는 재속회에 관한 교령을 반포하였다. 이러한 재속회에 회원이 된 사제들과 평신도들은 공동체생활이나 수도복이 없이 가난,순명, 정결을 서원하고 살아갔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서수도 생활에 대한 쇄신, 적응에 대한 교령이 나오게 되고 “수도생활에 대한 쇄신 적응이란 모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원천과 각 회의 창립 당시의 정신으로 계속 돌아감과 동시에 시대의 변화하는 상황에의 적응을 내포하는데 있다.” 라고 강조 하였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새로운 수도공동체들이 생겨나고 있다.수도생활은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열려있다.
특별히 1696년 프랑스
샬트르교구의 러베빌라셔날 본당사제인 루이 쇼베 신부와 멜마리안 드 티이에 의해서 몇 명의 처녀들이 지금의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의 기원인 작은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수녀회 오시는길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4길 111
주변 지하철 역 : 2호선 신남역 3번출구
주변 버스정류장
남산초등학교앞 : 간선300 , 402 , 609 , 651 , 836
남산초등학교건너 : 간선300 , 402 , 609 , 651 , 808 , 836 농어촌606 , 607
남산2동주민센터앞 : 간선420
남산2동주민센터건너 : 간선420-1
엘디스리젠트호텔앞 : 일반990 , 991 간선305 , 405 , 414 , 609 , 840 , 909 지선 북구2
엘디스리젠트호텔건너 : 간선305 , 405 , 414-1 , 609
전화번호 053-659-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