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설립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2코린토 5,20-
100년의 길고도 혹독했던 박해가 끝날 무렵 1883년 조선교구 7대 교구장 파리 외방전교회 블랑주교가 취임하였다. 정치적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였고, 질병과 기근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생활은 곤궁하였다.
블랑주교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운영하였으나 어려움이 많아 프랑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모원에
수녀들을 요청하였다.
1888년 7월22일
<1888년 7월 22일 제물포에 도착한 한국의 첫 선교사 수녀들>
하얀 꼬르넷을 쓴 네 명의 첫 선교수녀들이 아직 순교의 선혈이 채 마르지 않은 조선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는 조선에 신앙의 자유와 함께 주신 하느님의 첫 선물이 되었다. 입국 일주일 후에 순교자들의 후손 5명의 처
녀들이 입회하면서 순교의 영성이 봉헌의 삶으로 꽃피워지기 시작하였다.
자카리아수녀와 첫 선교 수녀들
<1890년 초창기 수도가족들과 수련 수녀들>
자카리아 수녀는 조선에 온 첫 프랑스 선교수녀로 한국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제 1대 원장이다. 1888년 5월 31일 샬트르를 출발하여 두 달간
의 긴 여행 끝에 에스텔수녀와 두 명의 중국 수녀들과 함께 조선에 도착
하였다. 수녀들은 가난과 질병 속에서도 꿋꿋이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며 자신을 봉헌하였다. 자카리아수녀는 6개월 후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고, 초창기 수녀들은 대부분 과로와 질병으로 일찍 사망하였다.
첫 선교 수녀들의 희생은 많은 여인들이 수도자의 길을 걷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순교자 멜 베아트릭스수녀(1874 ~ 1950)
베아트릭스수녀는 1906년 32살의 나이에 낯선 선교지 조선에 도착하였다.
간호수녀로 무료진료소의 환자들과 불쌍한 환자들을 찾아 돌보며 애덕의 삶을 살았다.
한국관구 초대 관구장으로 취임 2년 후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외국인들에게 피신 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어졌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셨다. 수녀는 수련장이던 으제니 수녀와 함께 1950년 7월 17일 한국수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체포되어
평양으로 끌려가 개성감옥 생활을 시작으로 죽음의 행진에 끌려 다니시다가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신 수녀님은 한국수녀들에게 수도회 규칙을 잘 지키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1950년 11월 3일 중강진 부근에서 총살
되어 사랑하던 한국 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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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멜 베아트릭스수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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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4년2월 4일 프랑스 출생
- 1896년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입회
- 1906년선교수녀로 내한
- 1924년 ~ 1932년수련장
- 1932년 ~ 1944년대구수녀원 원장
- 1944년 ~ 1946년서울수녀원 4대 원장
- 1948년 ~ 1950년제 1대 관구장 취임
- 1950년 7월 18일이북으로 납치
- 1950년 11월 3일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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