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관구
대구수녀원 설립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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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6월 11일 로마 교황청에서는 조선 대목구(단일교구) 제8대 교구장 뮈텔주교의 관할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분리하여 대구교구를 신설하고 제 1대 교구장으로 드망즈 주교를 임명하였다.
이에 조선의 단일교구가 <서울교구>, <대구교구>로 분리되었다.대구교구 출범 후 드망즈 주교와 로마 교황청의 고위 성직자인 베이드 베이야 주교 사이에 대구교구 내에 수녀원 설립과 후원에 관한 구체적인 협약이 체결되어 드망즈 주교는
1914년 6월16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총장수녀에게 수녀원 설립 허락을 공적으로
요청하면서 그 필요성과 연유, 건축자금, 기타 계획에 관한 협약서의 사본을 동봉하였다.
드망즈 주교가 수녀원 총원에 보낸 친필 서한 중에서 ..
존경하는 총장수녀님
전교지에 알맞은 수녀원을 설립하여 수녀들을 일하게 하지 않고서는 저는 마치 발동기 없는 기계와도 같아서
자신에게 속한 여러 가지의 일을 잘 해 낼 수 없을 것입니다...이 나라에서 이미 오랫동안 갖은 고통을 감수하며
일해오고 있는 귀 수녀회에 미쁨을 두기 때문에 이렇게 청합니다. 대구수녀원 설립에 필요한 수녀를 주시면 그
수녀들이 도착하는 즉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갖추어진 집과 땅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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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10월 12일
선교사 뱅상 수녀와 3명의 수녀가 파견되었다. 수녀들이 도착한지 3일 후인 10월 15일 에는 대구 수녀원과 임시성당을 축성하여 첫 미사를 성체강복으로 봉헌하고 입주하였다.
드망즈 주교는 교우가정에서 양육되고 있던 30명의 고아들을 수녀들에게 위탁하였다.
드망즈 주교는 처음부터 대구수녀원 설립에 관한 모든 계획과 수련원 설립, 수녀원 묘지에 관한것 등... 성녀 소화 데레사께 의탁하였다. 모든것이 성녀의 전구로 이루어진 것이라 여기며 항상 감사하여 옛 성당 주보성녀로 모셨다.
백백합 보육원
백백합 보육원
1915년 10월 15일 대구 수녀원 설립과 동시에 드망즈(Demange) 주교는 그 당시 계산동 본당 김보록 신부가 교우 가정에 위탁하여 양육 중이던 고아 30여명을 수녀들에게 위탁하였다.
아이들의 방이 마련되지 않아 수녀원 내의 작은 방에서 양육하기 시작한 것이 보육원 설립의 시초가 되었다.
수녀들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1925년 보육원 건물을 지어 아이들을 계속 돌보았다.
아이들의 수가 점점 증가하여 1947년에는 250명이 되었고, 6. 25 후에는 400명의 아이들을 수용하였다.
수녀들의 헌신적인 돌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이들에게 심리적인 보살핌이 필요함을 느껴 영아만 양육하기로
하고 6세 이전의 아이들은 홀트 아동복지를 통해 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그리고 남은 일부 아이들은 고등학교 교육과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그 후 보육원 고아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어 1988년부터 1991년 2월까지 ‘일시 보호소’로 운영하다가 1991년
3월부터 이 지역의 영세민 자녀들,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 다문화 자녀들을 대상으로 현재의 ‘ 백합어린이집’ 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 수녀원 의료 활동 – 성 요셉 무료진료소
성 요셉 무료진료소
1915년 대구수녀원 설립과 더불어 고아원이 운영되면서 원아들을 위한 약국이 초기부터 수녀들의 기본적인 의료
활동이었으나 수녀들의 가정방문을 통한 의료 활동이 시작된 것은 기록상으로 1928년부터이다.
대구교구 드망즈 주교는 성직자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교구 내 성직자들을 위한 병원을 짓기로 결심하고 1931년
성직자들을 위한 의무실과 휴식처로 사용할 2동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이 무료 진료소는 성직자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부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치료와 약품을 제공하면서
많은 환자들이 몰려와 1년이 못되어 증축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드망즈 주교는 일반 진료소에 적합한 새 건물을
짓기로 하였다.
1934년 7월 16일 축성되었다. 이와 같이 대구교구에서의 활발한 의료 활동은 실질적으로 수녀들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많은 개종자와 영세자를 얻으며 교회 내 선교활동에도 크게 공헌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료 진료소는 1955년 정식 인가를 얻어 <성요셉의원>으로 개칭해 명맥 을 이었으나 운영난으로 1973년 폐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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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월 11월 16일한국 수녀원이 정식관구로 승격되었고
초대 관구장에 베아트릭스 수녀가 임명
- 1960년한국인 관구장 방 아녜스 데레즈 수녀 임명
- 1967년 3월 21일대구 수녀원 관구 승격되어 서울과 대구 관구로 분리
- 1980년 4월 17일대구 관구 첫 선교지 중앙아프리카로 파견
- 1948월 11월 16일한국 수녀원이 정식관구로 승격되었고
아프리카로 첫 선교를 떠나며 선교에 대한 열정이 더하여져서  <<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현재 대구관구 500여명의 수녀들은 해외선교, 전교 사도직, 사회복지, 의료 새사도직, 교육 사도직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입하도록 기쁘게 자신을 봉헌하고 있다.
수녀회 오시는길
- 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4길 111
- 주변 지하철 역 : 2호선 신남역 3번출구
- 주변 버스정류장
남산초등학교앞 : 간선300 , 402 , 609 , 651 , 836
남산초등학교건너 : 간선300 , 402 , 609 , 651 , 808 , 836 농어촌606 , 607
남산2동주민센터앞 : 간선420
남산2동주민센터건너 : 간선420-1
엘디스리젠트호텔앞 : 일반990 , 991 간선305 , 405 , 414 , 609 , 840 , 909 지선 북구2
엘디스리젠트호텔건너 : 간선305 , 405 , 414-1 , 609
- 전화번호 053-659-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