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9일 08:30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대구관구 본원 성당
+ 찬미 예수님
하느님께서는 아름다운 대자연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들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미 찬송하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김 암브로시아 수녀를 이 세상에 소풍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김 암브로시아 수녀님은
소풍을 마치시고 하느님께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말에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합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이 세상에 보내주셨던 분께 다시 돌아감을 뜻하며 이런 표현을 사용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께 돌아가신 저의 누나이신 김 복순 암브로시아 수녀의 시신을 모시고
수녀님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도록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저의 누나 수녀님의 선종 순간부터 오늘 아침까지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신
관구장 수녀님을 비롯하여 모든 수녀님들의 기도에 가족들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성바오로복지병원 원장 수녀님을 비롯하여 병원 수녀님들의 정성스러운 간병과 기도에 감사드립니다.
이 미사 후 고별식이 끝나면 ‘사람아 너는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흙에 묻히시게 되어 생전의 너그럽고 온화하신 모습을 더 이상 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들과 평소에 고인을 가까이서 뵈었던 분들에게는 살아 계셨을 때보다 수녀님의 모습이
더욱 뚜렷이 떠오르고생전에 남기신 말씀이 더욱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고인이 차지하신 자리를 어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고인은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하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육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시어 하느님의 품에 안기시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수녀님은 우리와 똑같이 숨을 쉬며 이승에서의 삶을 공유하셨는데,
지금은 이렇게 유명을 달리하여 말없이 누워 계십니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방문했을 때 숨을 몰아쉬시며 저와 병원 수녀님들의 기도와 말씀을 듣고 계셨습니다.
이미 예상은 하였지만, 막상 오늘 이 자리에서 이렇게 유명을 달리 하신 누나를 마주하게 되니
인간적으로는 그저 허망하고 아쉬울 뿐입니다.그러나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평생 그토록 바라셨던
하느님과 성모님을 뵙게 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계실 것으로 믿고 있는 오래전에 선종하신 부모님을동시에
함께 뵙게 되는 은혜를 받으신 것으로 생각하면 그저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로 암브로시아 수녀를 보내주셨는데,
이제 때가 되어 사랑과 자비의 상(賞)을 베푸시고자 당신의 딸인 암브로시아 수녀를
영광 가득한 나라로 초대하시어 데려가셨습니다.
누나 수녀님은 제가 병원으로 찾아뵐 때마다 “이때까지 이렇게 사는 것도 다 하느님의 은혜인데,
하느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기쁘게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의 뜻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봉독된 독서와 복음 말씀은 누나 수녀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의 기준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의 정신이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
기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마을에서 신앙심 깊은 처녀 4명을 뽑아 공동체를 만들었던
루이 쇼베 신부님의 정신이 수녀님들을 통하여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오늘 제 1독서의 지혜서 저자는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라고 강조하면서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어
의인들의 생명이 육체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하느님 곁에서 영원히,
그리고 영광스럽게 지속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모든 가르침을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여정은 학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삶의 경륜과 겸손한 마음으로 깨닫는
신앙인들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분과 함께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지나친 소유욕과 지나친 탐욕이
우리 자신을 숨 막히게 하고 사랑할 수 없게 막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노년의 가치를 무시하거나 힘없게 보이는 어르신들의 존재 자체의 가치를 간과하는 사람들은
신앙 안에서의 삶의 가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노년은 인생의 성숙도가 정점에 이르는 대단히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어르신 수녀님들은 우리 수녀회의 보물 중의 보물이시며 우리의 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모든 것을 하느님께만 온전히 의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죽음의 의미에 대해 신앙 안에서 잘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우리 곁을 떠나서 하느님께 돌아가신 수녀님을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이
이 순간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만이 우리 가족과 수녀회 공동체에 위로와 평화를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도드립니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신 수녀님이 우리 가족과 수녀회 공동체 안에서 차지한 자리가 얼마나 크고 중요했는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수녀님의 빈자리는 어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평소에 이루고자 하였던 뜻을 잊지 않고 남아있는 우리가 감사와 일치, 나눔의 생활을 이어간다면
수녀님의 몸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을지라도 수녀님의 넋과 얼은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람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면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잘 사는 삶일지라도 영원히 잘 사는 것이 아니라면 궁극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잘 사는 것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수녀님들은 잘 사는 삶, 그것도 영원히 잘 사는 수도자의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의 누나 수녀님은 수도자로서 이 세상에서의 잘 사는 삶을 마치시고, 이제부터는 영원한 생명의 삶의 문턱을 넘어
하느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계실 저의 누나 수녀님이 혈육의 가족뿐만 아니라
평생을 수도생활의 동반자로 함께 하셨던 수녀님들을 위해 성모님께 간구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저의 누나 수녀님의 장례에 자상하게 살펴주시고 배려해주신 관구장 수녀님을 비롯한
공동체 모든 수녀님들과 전주 성바오로복지병원 원장 수녀님을 비롯하여
병원 공동체 수녀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당신께서 불러 가신 주님의 종이자 딸인 김 복순 암브로시아 수녀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고인의 유가족과 동료 수녀들에게는 위로와 평화를 베풀어주소서. 아멘.